요즘 들어 세월이 참 빨리 가는 걸 느낍니다. “세월이 흘러감은 그냥 우리의 지각일 뿐이며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하는 것은 오직 우리들 마음이다” 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불가에서 이르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라는 말이 지금에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어설프게 여행 작가 흉내 좀 내봤습니다.
청계천이 떠올랐다. 몇년전 만들어 진 잘 정돈된, 그런 개천이 아니라 똥물과 쓰레기가 뒤 석인
내 어렸을 적의 동대문 근처 어디쯤을. 그 당시 청계천은 지금의 네팔에 있는 개천만도 못했다.
동대문 뒤쪽에서 신설동까지 청개천변에 하꼬방으로 만들어진 집장촌이 있었는데 당시 서울에서
끈 붙이고 뭐라도 해서 먹고 살려는 사람들이 그나마 자리 잡을 수 있는 데는 청계천 뚝방촌 뿐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처녀가 할 일은 평화시장 근처에서 미싱일을 하던가 아니면 청계천 판자촌에서 자신
처럼 피곤한 남자들한테 몸을 파는 선택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왜 신성하다는 히말라야
의 네팔에 와서 청계천이 생각났을까? 네팔의 모습이 내 과거를 자극해서 나는 잠깐 동안 시간 여행을
떠났지만 생각이란 그렇게 우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란 걸 난 지금 알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필연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네팔의 이 더러운 개천은 40년의 시공간을
밀어내고 청계천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이 지금은 아름다운 어떤 것들의
투영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지금은 만질 수도 느껴볼 수도 없으니까.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철없는 아가씨가 카드 긁어서 명품 백 사듯이 나도 그냥 의식 없이 사진 한 장 박았다.
뒤에 보이는 산이 도봉산이나 설악산이 아니고 명품 산 “에베레스트”라고...
명품 산 에베레스트에서의 인증 샷을 위해 걷고 또 걸으면서 맑은 물도 아름다운 새소리도 듣지
못했다. 나는 단지 삼일동안의 고단한 행군을 마치고 그럴싸한 추억의 한 장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3,300m 푼힐 정상에서의 짧은 시간, 매몰찬 바람과 추위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보다는
사진 몇 장 찍고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내려오는 길에 그 모든 것들을 깨달았다.
실제로 네팔 사람들이 얼마나 순수한 눈동자를 갖고 있는지, 아름다운 계곡과 물은 어찌나 우리나라
산들의 그것처럼 아름다운지, 진정 아름다운 것은 에베레스트 정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치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스며 들어 있다고...
그래도 나는 나중에 누군가에게 히말라야 여행을 이야기할 때면 오르고 내려오면서 보고 느꼈던
수많은 순수한 영혼들과 아름다운 자연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한 이 사진을
보여주겠지? 아! 이런 철없음이 해소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더 필요할까?

마치 우리나라 무슨 계곡같다. 물이 너무 맑다. 꽃은 왜 이리 고운지? 등정 중에 티벳계 네팔사람인
가이드의 여자친구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허름한 집 옆에는 대나무를 엮어서 엎어놓은 소쿠리안
에서 병아리들이 삐약거린다. 예전에 많이 보았던 소박한 모습들이 정겹다.
아궁이에 나뭇가지로 불을 집히고 식사를 하기까지는 짧지 않았지만 이곳에선 무엇하나 서두르지
않는다. 모든것이 여유롭다. 어디에 살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웃는 그들을 보면 순수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왜 중요하고, 우리가 순수함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 왔는지를 느끼게 된다.
우리 아이들도 방과 후 학원에 보내지 말고 마음껏 놀게 했으면, 옷은 비록 남루하지만 얼굴에 그늘이
하나도 없다.

가이드 여자친구와…
나는 중국에 오래 생활하며 확실하게 느낀 것이 하나있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독한 고량주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당연히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살면서 백알이라고
알려진 빠이주(白酒)는 특별한 날에 마시고, 평상시는 맥주를 주로 마시며, 웬만해선 술 취한 사람도
보기 힘든 그들의 술 문화를 알았다. 아니 사실은 내가 다녀본 국가 중 한국 사람들 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국민들은 못 본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현상이 그냥 사회 습관이겠지 싶었는데 요즈음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조금 짐작이 간다. 어렸을 때부터 집단, 획일화된 교육과 꽉 막힌 사회 구조, 취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환경에서 유일한 탈출구가 음주 문화였을 것이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교육다운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능력에 걸 맞는 대우를 받는다면,
성적이나 능력을 키워 자본주의사회의 효율적인 톱니바퀴같은 삶이 아니라 북유럽의 어느나라처럼
하고 싶은 일하고 필요할 정도의 급여로 당당하게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오랫동안 나가 살다 보니 한국 실정도 모르고 주제 넘는 이상주의자가 되었나 보다.

카투만드 퍼슈퍼티나트 화장터
죽음이 축제가 되는 곳. 당시에는 시신를 화장하는 냄새와 지저분한 풍경이 기억에 전부였는데
지금 곰곰이 생각하니 이들의 장례 의식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사실 죽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인가?
어차피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장례는 그냥 이별 의식이니까. 그래도 어쨌든 이번 생에
주어진 나의 배역은 잘 소화하고 가야 하겠지? 그래야 다음 생에 좀 더 멋진 역할을 배정 받겠지?
2009년 11월 네팔 카투만두에서 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