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 유럽에 전해지다 (1)

1698년 중국에 파견되어 있던 필립포 그리말디(Filippo Grimaldi) 신부는 유럽의 라이프니츠에게 편지를 보냈
는데, 여기에는 주역의 64괘가 실려 있었다. 그리말디 신부는 청나라 강희대제의 서양 학문 스승이자 고문으로
중국 수학위원회 책임자였다. 그는 중국에서 발견한 주역에 깊게 감명을 받았다. 그가 라이프 니츠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자신이 받은 감명에 대해 더 높은 지성인의 추인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라이프니츠는 즉각 반응했다. 그는 주역의 괘상을 보자마자 그 속에 들어 있는 심오한 원리를 파악하고 2진법
을 발명해냈다. 주역은 양(-)과 음(--) 2가지 기호체계로 되어 있는데, 라이프니츠는 이것에서 1과 0을 사용하는
2진법 체계를 찾아낸 것이다. 이것은 후에 컴퓨터 체계에 도입되어 디지털 문명의 도화선 에 불을 붙였다.
 
2진법은 컴퓨터의 체계 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체나 뇌 신경망 등은 모두 2진법 체계를 사용
하고 있다. 2진법은 가장 경제적인 표현으로, 자연계는 효율적인 것을 먼저 선택한다. 왜냐하면 진화란 경제적
인 쪽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가 주역을 공부하자 전세계의 지성이 관심을 갖고 이를 연구하였다. 후에 교황청의 명령으로 그리
말디 신부와 함께 파견되었던 조아심 부베(Joachim Bouvet) 신부가 본격적으로 주역 연구에 몰두했다. 부베
신부는 라이프니츠와 무수히 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주역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것은 라이프니츠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많은 사람들이 라이프니츠가 세계 제일의 지성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주역 연구였을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에 많은 과학자들이 주역을 통해 최고의 학자
로 부상한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주역의 원리는 우주 최고의 원리기 때문에 그것을 접한 과학자
들이 크게 발전하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최고 지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적으로 주역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베 신부는 주역에 몰두한 나머지 아예 신부직을 사임했다. 교황으로부터 면직을 허락받은 부베는 평생동안
주역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가 주역 원리를 얼마만큼 깨달았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부베가 신부직까지
벗어 던지고 주역에 몰두한 것만 봐도 그에게 주역이 얼마만큼 큰 가치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칼 융은 서양에 처음으로 번역된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의 주역 책에 장문의 서문을 써서 주역에
대한 자신의 감동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역 이론에 정통했던 융은 10만 가지의 꿈을 분석하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의 최고 유형이 괘상임을 깨달았다.
 
우리 정신은 주역의 구조를 바탕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래된 동창생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것은 바로 주역의 패턴 인식과 같다. 갓난아이가 부모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은 주역을 통해
원형(原型, Archetyp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는데, 이 원형이 주역에서 괘상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역이 서양에 전해지자 이제 더 이상 주역은 중국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주역은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
칼 융,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유가와 히데키(湯川秀樹, 중성자를 발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 헤르만 헤세,
존슨 얀(Johnson Yan. DNA와 주역의 관계를 해석), 요한 괴테(Johann Goethe),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64괘를 시에 활용한 멕시코 시인) 등 전세계 지성인들이 공부하게 된 것이다.
 
주역은 오늘날, 중국의 고대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계를 연구하는 최고의 지침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주역을 모르면 세상을 모른다. 부베 신부의 첫 깨달음이 바로 이것이 었다. 융이나 아인슈타인, 보어 등도 주역
을 알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세상의 지혜'를 찾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나도 50년 전쯤에 주역을 접했는데, 자연과학을 공부했던 나는 주역을 보자마자 '여기에 최고의 진리가 있다
.하고 느꼈다.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최상의 과학이었던 것이다.
 
주역은 오늘날에 와서 가장 각광받는 과학으로 알려져 있다. 주역을 동양의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일
뿐이다. 지금은 주역이란 무엇인지를 파헤치고 공부할 때다. 신비란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신비할수록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공자는 주역을 발견하고 몹시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비로소 평생
을 몰두할 학문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주역이 세상에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시 평생 몰두할 학문이 여기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