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행이 아닌 8괘인가? (1)

오행은 중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범주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오행 범주로 세상을 분류한다.
한의학이 그렇고 명리학이 그렇고, 동양악기의 음률도 5개로 분류되어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팔괘보다 오행
을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팔괘보다 오행을 많이 쓰는 이유는 사실 매우 간단하다. 오행은 쉽고 간단하며
팔괘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행은 우주 만물을 모두 다룰 수 없다. 세상의 지혜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팔괘를 알아야 한다. 어째서 그런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먼저 사상을 살펴보자.
 
⚌(太陽) ⚍(少陰) ⚎(少陽) ⚏(太陰)
 
이것은 4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들로 표시할 수 없는 어중간한 성질을 가진 원소들이 있다. 이름
하여 토(土)라고 하는 것이다. 토는 사상의 중앙인데, 그림으로 보면 알기 쉽다.

⚍ o ⚎
 
그림에서 o 은 중앙점으로, 수학에서는 원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원점을 하나의 원소로 보면, 원소는
⚌ ⚍ ⚎ ⚏ 4가지와 원점이 합쳐져서 5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오행이다. 결국 오행이란 사상에다 원점 하나
를 추가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오행은 음양이 팔괘로 진화하는 과정 중에 존재하는 것인데, 2차원 공간의 성질을 망라
한 것이다. 2차원이라는 것은 평면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옛사람들은 세상을 평면으로 보았다. 그들은 지구가
둥근지 모르고 영원히 하늘 아래에서 평평한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동서남북 네 방향만을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4방의 요소를 자기 자신이 있는 원점과 함께 5개의 원소로 사용한 것이다. 평면은 이렇게
4방 요소와 중앙 원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행은 이렇게 2차원적으로 세상을 분석하는데, 주역의 팔괘는 3차원으로 되어 있다. 지구가 둥글고 공간이 3
차원이기 때문이다. 오행은 2차원 공간요소, 즉 평면구조이고 팔괘는 3차원 공간으로서 입체구조를 갖고 있다.
평면과 입체 이것이 오행과 팔괘의 차이다. 우리의 우주는 평면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입체공간으로서만
표시될 수 있다.
 
팔괘는 범주의 완성이다. 그런데 이것은 범주의 완성인 팔괘만 써서 세상을 보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을 볼 때
우리는 팔괘가 아닌 것들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또 세상을 음양의 2가지로 볼 수도 있고, 사상의 4가지로
볼 수도 있다. 원점까지 사용하면 1차원 원소인 음양은 3가지 범주로 확대될 수 있다. 또한 사상은 오행이 되고
팔괘는 구성(九星)이 된다.
 
노자는 음양을 다루면서 충기(沖氣)라는 요소를 추가했는데. 이는 원점의 성질을 뜻한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중간이라는 형식인데, 이것이 바로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하는 범주다. 오행은 동남서북과 중앙인데, 이름을
붙이면 목화금수토(木火金水土)가 된다. 팔괘의 경우는 중간점을 사용하여 9개의 원소로 만들 수 있지만,
중앙은 제로의 성질이기 때문에 굳이 원소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오행은 사상에다 제로의 성격을 지닌 원점을
추가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오행의 토는 원소가 아니고 노자가 말한 충기도 원소가 아니다.
 
실제 세계의 사물을 예로 들어 보자. 소금과 고춧가루가 있다면 2개의 병이 필요할 뿐이지, 소금과 고춧가루를
섞어 병 하나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실제 세계를 분류하다가 2가지로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나온
다면 이를 중앙 원소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양이고, 집에 있는 것은 음이라면, 한 발은 밖에
있고 한 발은 안에 있을 때 이를 중간에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경우 현실적 의미는 있으나 팔괘를
사용할 때는 어중간한 사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 세상은 음양(또는 원점 추가)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것
이 있고 이것으로 부족해 사상(또는 토 추가)으로 봐야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사상이나 오행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은 팔괘에 이르러야 비로소 그 뜻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옛사람들은 오행이면 충분한데 복잡하게 팔괘까지 사용할 이유가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범주란 생활에서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범주를 통해 온 우주의 섭리를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본시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데 굳이 2차원 범주로 세상을 볼 필요는 없다. 3차원은 안에 2차원을 포함시킬 수 있으나, 2차원은 3차원
을 포함시킬 수 없다.
 
우주는 3차원이기 때문에 3차원 범주인 팔괘가 필요하다. 물론 우주는 3차원 요소에 시간을 포함한 4차원의
세계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3차원 원소인 팔괘를 중첩시켜 시간을 추적한다. 이것이 바로 대성괘(大成卦)가
탄생하게 된 이유다.